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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의 야생 벼를 아십니까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2시간 남짓 날아가면 러시아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에 닿는다. 해삼이 많아 ‘해삼위(海蔘威)’라고 불린 블라디보스토크. 본래 고조선과 발해의 땅이었고 구한말 국외 독립운동의 중심 기지였던 신한촌(新韓村)이 있던 곳. 거기서 북쪽으로 1시간30분 정도를 차로 이동하면 우스리스크에 닿는다. 그 근방에 ‘한마당’이라 불리는 너른 들판이 있다. 지금부터 꼭 70년 전 그 들판에는 수확을 앞둔 벼들이 익다 못해 고개를 숙인 채 추수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고려인이 애써 심은 벼였다. 하지만 고려인은 추수를 기다리는 자식 같은 벼들을 거두지도 못한 채 인근 라즈돌로예 역에서 강제로 화차에 태워져 중앙아시아의 사막 한복판에 버려졌다. 나라 잃은 백성들은 그렇게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리고 있었다.

그 후 주인 잃은 벼들은 수확되지 못한 채 아무도 돌보지 않아 포기째 얼어 쓰러졌다. 낱알들은 흩어져 일부는 썩고, 또 일부는 겨우내 언 땅 속에서 살아남아 이듬해 봄에 스스로 싹을 틔웠다. 그렇게 반복하길 수십 년…. 아무도 거두지도 돌보지도 않았지만 스스로 생존의 몸부림을 거듭하며 그것들은 야생 벼로 진화했다. 일반 벼의 낱알은 겉이 매끈한 데 비해 야생 벼의 낱알에는 보리처럼 긴 수염이 나 있다. 곡식을 쪼아 먹는 새들의 부리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고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이 낳은 유전적 변이의 결과였다.

극동(極東)에서 강제 이송당해 중앙아시아의 그 척박한 사막 위에 짐짝처럼 부려진 뒤에도 악착같이 살아남았던 고려인들. 그 후 다시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라시아 대륙의 극서(極西)에 해당하는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 발틱 3국까지 민들레 홀씨처럼 흘러간 질기디 질긴 생명력의 고려인들. 그들의 진한 민족적 생명력은 언 땅을 뚫고 다시 살아난 야생 벼처럼 그렇게 스스로를 지켜내며 진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탈린 체제 하에서 강제 이주당했던 고려인 중 일부가 1956년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 시대가 열리면서 다시 연해주로 옮겨왔다. 아울러 사회주의 블록이 요동치던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도 고려인이 중앙아시아로부터 역이주해 와 다시 옛 땅을 일궈내기 시작했다. 그들 자신이,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맨손으로 일궜던 땅들을 다시 밟고 다시 일군 것이다.

여기에 한 민족종교단체(대순진리회)가 힘을 보태 애초에 고려인이 터를 닦아 놓았지만 오래 방치돼 있던 한카 호수 주변의 농장들을 하나 둘 사들여 지금은 모두 17개의 농장에서 소와 돼지를 기르고 닭을 치며 때론 사슴을 방목한다. 콩 농사와 쌀농사 등도 5년째 짓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지금도 어김없이 야생 벼가 출현한다. 70년이 넘도록 죽지 않고 생명의 질기디 질긴 끈을 이어온 이 야생 벼야말로 고려인의 슬픈 운명과 질긴 생명력을 다시금 확인케 한다. 연해주의 야생 벼! 그 낱알 낱알은 다름아닌 고려인의 한 맺힌 눈물 그 자체다. 그 야생 벼를 움켜쥐고 나 역시 하염없이 울었다.

이제 곧 남과 북의 정상이 다시 만난다고 한다.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진 않고 있지만 적어도 그들의 시야가 한반도 안의 좁다란 정치적 흥정에 갇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진정한 민족의 하나됨을 생각한다면 세계 도처에 흩어진 700만 해외동포와 그들의 삶의 역정을 가슴과 시야에 담아야 하지 않을까. 다음달 5일은 세계 한인의 날이다. 세계 도처에 흩어진 700만 해외동포가 존재함을 기억하는 날이다. 적어도 민족의 지도자를 자임하려면 연해주의 야생 벼가 상징하듯 수많은 고려인, 아니 세계 각처의 한국인이 흘린 눈물을 닦아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진홍 논설위원  중앙일보  2007.09.2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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