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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자’ 2000명… 일당 1000원 소작으로 연명

중앙亞 강제이주 70주년… 우크라이나로 再이주한 고려인들 ‘고달픈 삶’

경찰 단속에 쫓기고 언제 강제추방될지 불안 출생 신고 못하고 2세들도 진학·취업 어려워
한국정부, 크림반도 등 3~4곳 정착촌 추진


구소련의 스탈린 정권이 ‘극동 국경지역 조선인 추방에 관한 명령’을 발동해 극동 지역의 조선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지 올해로 70년. 이후 중앙아시아에 정착했던 이들은 1991년 구소련 붕괴 이후 지역 경제가 어려워지자 또다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흑토지대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이주한 ‘재이주 고려인’들은 무국적자로 전락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수풀 림(林)이오, 수풀 림.”

떠듬거리는 한국말로 자신의 성이 ‘림(林)’이라고 소개하며 요시프 림(59)씨가 인사했다. 그는 한반도에서 약 8000㎞ 떨어진 동유럽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북쪽에 위치한 잔코이에서 농사를 지으며 연명하고 있는 무(無)국적 ‘재(再)이주 고려인’이다. 가을걷이가 한창인 흑토 들판에 서 있는 그의 얼굴은 새까맣고, 제대로 씻지도 못한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 들판 한가운데 비닐 장판과 판자를 얼기설기 엮은 한 평 남짓한 그의 움막집이 보였다. 움막 안에는 이불 한 채와 솥 같은 가재도구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 우크라이나 남부 잔코이에서 소작농으로 일하며 살고 있는 타지키스탄 출신 고려인 요시프 림씨가 뿔뿔이 흩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며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옥수수단 뒤로 그가 사는 움막집이 보인다. /이지혜 기자

림씨는 이 움막 하나에 의지해 3월부터 10월까지 남의 농사를 대신 짓는다. 2㏊가 넘는 땅에서 홀로 옥수수 농사를 지어 주고 땅 주인에게서 받는 돈은 일당 5그리브나. 우리 돈 1000원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거기서 다시 물세와 집세를 내면 손에 쥐는 것은 거의 없다.

그는 원래 타지키스탄 국적을 갖고 있었다. 1991년 구소련이 붕괴한 뒤 타지키스탄에 내전이 터지자 1994년에 우크라이나로 건너왔다. 처음에는 가져온 돈으로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고 1997년에는 집까지 장만할 정도로 괜찮았다. 문제는 이 집을 팔아 타지키스탄으로 돌아가려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먹고 살기 바빠 여권을 잃어버린 그는 아무런 신분증이 없는 상태였다. 국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매입자가 집문서를 가져가고는 집값을 내놓지 않았다. 살림이 갈수록 어려워졌고 급기야 아내와 이혼했다. 잔코이 어딘가에서 장사를 한다는 아들 소식은 끊긴 지 오래다.

림씨처럼 먹고살 길을 찾아 우크라이나로 왔다가 여권을 잃어버리고 무국적 상태가 된 재이주 고려인은 2000명이 넘는다. 우크라이나가 아닌 다른 나라 국적을 지닌 것으로 추정되는 2만여명도 무국적 상태에 빠질 위험을 안고 있다. 국적을 잃어 신분 보장이 안 되면 경찰의 단속을 피해 숨어 지내야 하고, 최소한의 사회보장이나 의료 혜택도 받을 수 없다.

7년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건너온 샤샤 윤(40)씨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농장에 불이 나는 바람에 여권을 잃어버려 무국적자가 된 그는 “아버지가 공산당 간부까지 지냈고 나도 대학을 나왔지만 도큐멘또(신분증) 없이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농사밖에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 여인과 결혼하고도 혼인 신고를 하지 못했고, 두 살 난 아들의 출생 신고 역시 못했다. 림씨나 윤씨처럼 신분이 불안정한 고려인들은 값싼 소작농으로 전락해 임금도 제대로 못 받고 수확한 농산물도 헐값에 넘겨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우크라이나 고려인협회장 스베틀라나 리(51)씨는 “고려인 중에는 브리가다(소작농) 생활을 하면서도 빚만 늘어 땅굴에서 겨울을 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들의 2세들까지 무국적 신분이 되기 때문에 가난은 대물림된다. 우크라이나는 11학년 단일 학제의 의무 교육이지만, 무국적 고려인 자녀들은 학교를 마쳐도 졸업장을 받을 수 없고, 졸업장 없이는 취업이나 대학 진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들 고려인의 국적 회복을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올 1월 ‘국적회복위원회’를 가동시켰다. 면담을 통해 신분을 확인한 다음 우크라이나 국적을 주려는 것이다. 그러나 무국적 고려인을 찾아내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강제 추방이 두려워 고려인들이 좀처럼 조사에 응하지 않는 탓이다.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 허승철 대사는 “우리 정부에서 8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고려인 국적 회복과 정착을 돕고 있다”며 “크림반도와 남부지역 서너 곳에 대규모 농지를 장기 임차해 고려인 정착촌을 세울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 정부와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허 대사는 그러나 “고려인의 국적 회복 문제나 정착촌 건설은 100여 개에 이르는 다른 소수민족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하는 민감한 사안”이라며 “고려인이 이들과 공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카레이스키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이나 생계를 위해 극동 러시아 지역에 정착했던 조선인들은 1937년 스탈린의 소수민족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쫓겨가게 된다. 러시아말로 ‘카레이스키’라고 불리는 이들 고려인은 주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억척같이 황무지를 일궈 가장 성공한 소수민족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다 1991년 구소련이 해체돼 15개 독립국가로 분리되자 배타적 민족주의 바람이 불면서 설 곳을 잃고 연해주나 우크라이나로 다시 옮겨 살게 됐다.

잔코이(우크라이나)=이지혜 기자 wise@chosun.com   조선일보   2007.10.02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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