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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예술혼

 

 1971년 7월 5일 공주 송산리 고분군(群)에서 배수로를 파던 인부의 삽에 벽돌이 부딪혔다. 벽을 따라 파들어 가니 무덤 입구가 드러났다. 김원용 중앙박물관장을 단장으로 하는 발굴단이 급히 내려 왔다. 사흘 뒤 전국에서 모여든 기자들 앞에서 무덤 문이 열렸다. 1450년 동안 땅 속에서 잠자던 무령왕릉은 그렇게 깨어났다.

▶무령왕릉은 신라·고구려에 가려 있던 백제문화를 다시 보게 했다. 108종, 3000점에 이르는 출토 유물은 웅진(熊津·옛 공주)시대 찬란한 백제 예술을 자랑했다. 무덤 입구엔 고대 왕릉 중 유일하게 묻힌 이의 신원을 알리는 지석(誌石)과 무덤을 지키는 뿔 달린 석수(石獸)가 있었다. 안에선 왕관 장식, 귀고리, 팔찌, 은잔, 구리거울, 뒤꽂이, 목걸이까지 숱한 국보급 유물이 쏟아졌다.

▶백제문화는 1993년 부여 능산리 고분군 부근 논에서 발견된 금동대향로(金銅大香爐)가 다시금 과시했다. 높이 64㎝, 지름 20㎝, 무게 11.8㎏의 초대형 향로는 놀랍도록 정교하고 화려했다. 산 23개가 네댓 겹으로 첩첩산중을 이룬 뚜껑 속에 온갖 인물과 동물이 들어 있었다. 몸체는 활짝 피어난 연꽃 모양이었다. 뚜껑 위엔 봉황이 날고, 받침대엔 용이 꿈틀거렸다.

▶최근 부여 왕흥사 터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가 그제 공개됐다. 부처님 사리를 담은 청동 사리합(盒)에 은제 사리병을 넣고 그 안에 다시 금제 사리병을 담았다. 사리합 몸체엔 ‘정유년(577년) 2월 15일 죽은 왕자를 위해 백제왕 창(昌)이 절을 세웠다. 사리를 2매 넣었는데 부처님의 조화로 셋이 됐다’고 새겨 있다. 금 장식과 귀고리, 형형색색 구슬 8000여점도 나왔다.

▶위덕왕의 생전 이름 ‘창’은 1995년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화강암 사리감(龕)에도 쓰여 있었다. 금동대향로가 발견된 지점에서 20m밖에 안 떨어진 곳이어서 대향로 역시 위덕왕과 관련 있을 거라는 견해도 있다. 위덕왕은 용맹을 떨치던 왕자 시절 자기를 도우러 출병한 아버지 성왕이 전사하는 아픔을 겪었다. 거기에 아들마저 앞세운 슬픔이 사리장엄구에 배 있다. 아픈 가족사를 종교와 예술로 승화시킨 위덕왕이 오늘 우리에게 백제 예술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기쁨을 더해준다.
 

이선민 논설위원 smlee@chosun.com 조선일보  2007.10.25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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