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의궤만큼 우리에게 자부심과 분노, 부끄러움 등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문화재가 또 있을까. 의궤는 왕실·국가의 주요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일종의 행사 보고서로, 지난 6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방대하고 치밀하면서도 놀라운 예술성을 갖고 있는 것이 놀랍다”며 등재 이유를 밝혔다.
등재 신청 1년여 만에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자리매김한 의궤는 그러나 서울대 규장각(546종 2940책),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287종 490책) 소장본 어느 것도 국보, 보물 심지어 중요민속자료로도 지정돼 있지 않다.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기록문화의 꽃’이 정작 국내에서는 홀대받고 있는 셈이다.
문화재청 서병패 전문위원은 문화재청과 서울대, 한중연이 공동으로 30일 국립고궁박물관 대강당에서 개최하는 학술심포지엄 ‘조선왕조 기록문화의 꽃, 의궤’에서 의궤의 국가문화재 지정을 위한 본격 논의를 제안할 예정이다. 10여년에 불과한 학계의 의궤 관련 연구를 반성하고 해외에 나가 있는 의궤 등 문화재 환수 요구와 전략 마련에 힘을 싣자는 취지이다.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강화도 외규장각 의궤(191종 297책)와 일본 궁내청 소장 오대산본(71종 154책)을 비롯해 해외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는 2007년 10월 현재 총 7만6143점이다. 이 중 환수된 문화재는 4878점으로 6.4%에 불과하다. 프랑스가 병인양요(1866년)때 약탈해간 의궤는 어람용이 다수 포함돼 있어 그 문화재적 가치가 특히 높다. 외규장각 의궤는 1990년대 초반 고속철도(TGV) 구매 대가로 반환받기로 약속받았지만 프랑스는 외규장각 고서 ‘휘경원원소도감’을 돌려준 뒤 고속철도를 팔자 입장을 바꿔 반환을 미루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 7월 외교통상부 주관 하에 외규장각 반환을 위한 정책포럼을 가졌으며, 이와 별도로 외규장각 도서 디지털화 사업을 연내에 마무리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최종덕 국제교류과장은 “프랑스 측이 우리의 외규장각 유일본 의궤 반환(혹은 임대) 요구에 대해 동일한 가치를 지닌 같은 수의 고서와 맞바꾸자는 조건을 달고 있어 협상에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외규장각 고서를 약탈한 비슷한 시기(1875년)에 뉴질랜드에서 밀수입된 ‘마오리족 전사의 두상 미라’를 되돌려주겠다는 루앙시의 최근 결정에 “프랑스 박물관 소장품을 무조건 반환해야 하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제동을 걸기도 했다.
송민섭 기자 세계일보 2007.10.29(월) 1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