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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03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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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신문의 [자학]이 반일운동을 불러들였다

'다케시마를 한국에 넘겨라' '야스쿠니참배를 중지하라'는 안이한 주장을 되풀이할 정도로 반일데모가 확대

諸君(제군)! 2005년 6월호

저자: 하타 이쿠히코(秦郁彦) 현대사학자

 
 만개한 밤벚꽃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통하는 몇몇 친구와 술을 나누면서 소소한 얘기에 젖었다.

 [오늘 밤도 자이언츠가 지고 있을까?]

 [경기 지도도 이상하지만, 그렇게 지고도 웃고 있는 호리우치 감독은 좀 이상해. 제정신이 아닌 거 아냐?]

 [제정신이 아닌 건 최근의 아사히신문도 마찬가지지. 國賊(국적)으로 취급당할지도 모르면서 다께시마(독도)를 한국에 넘기고 우정의 섬으로 이름을 고치라는 와카미야 논설주간이 제언한 걸 읽었어?](注: 3월 27일의 [다께시마(독도)와 독도]라는 제목의 와카미야=若宮啓文 논문)

 [읽었어, 읽었어. 반응이 좋으면 다음엔 센카쿠(일본명 조어도)를 중국에 넘기라고 말할지도...]

 [그 사람은 친미ㆍ친한ㆍ반중(反中)이라 그런 일은 없을 거야]

 [4월 7일 아사히 조간에 재미있는 기사가 있었네. 1696년에 안용복이라는 사람이 다께시마(독도)에서 일본인을 내쫓았다고 한국교과서에 써있는 모양이야.]

 [그럼 (안용복을) 내쫓기 전엔 일본영토였다는 것이 되는 거 아냐?]

 [재미있는 건 이문열이라는 한국 소설가가 다께시마(독도)를 북조선에 넘겨주고, 대포동 기지를 만들어 일본을 위협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고 들었네. 어쩌면 내년쯤...]

 이렇게 閑談(한담)은 끝없이 계속됐지만, 생략하겠다.


자던 아이가 일어나는 다께시마(독도)

 [자는 아이를 깨운다(*조용하게 정리된 일을 건드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말함)]는 말이 있는데 다께시마(독도), 센카쿠(일본명 조어도)에서 반일공세를 걸어왔던 한국, 중국이 영토문제에 전혀 관심 없었던 일본인을 두드려 깨운 것 같다. 이제까지 저자세였던 일본정부도 드디어 위기감에 눈을 뜬 것 같다. 방치해두면 선심 좋은 와카미야식 패배사상이 확산돼 북방, 센카쿠(일본명 조어도), 오키노도리섬을 포함한 영토문제가 모두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고 우려한 것 같다.

 나카야마(中山) 문부과학성 장관과 마치무라(町村) 외무장관(前문부과학성 장관)의 강경파 콤비는 중학교용교과서 검정결과가 공표되는 기회를 포착해 긴 세월의 退嬰(퇴영)주의에 대해 단번에 반격에 나섰다.

 내외 반일파로부터 증오의 표적이 되고 있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저작자가 되고, 후소샤가 발행자가 되어 있는 일본역사교과는 다른 7개의 출판사와 비교해 불공평하다고 생각되는 검정기준([근린제국조항])을 적용, 총 124개 부분의 수정을 요구 당했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공민]교과서(이하 [만드는 모임], [후소샤 책]으로 약칭)가 섬 사진에 [한국과 우리나라(일본)에서 영유권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는 다께시마(독도)]라고 붙였던 설명문을 [우리나라(일본) 고유의 영토지만,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는 다께시마(독도)]라고 수정한 것이다.

 문부성은 종래부터 외무성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정부견해와 마찬가지라고 설명했을 뿐이었지만 획기적인 방향전환이었음에 틀림없다.

 게다가 다께시마(독도) 사진 옆에 있는 북방영토에 대해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다], 센카쿠(일본명 조어도)제도는 [중국이 영유를 주장]하기 때문에 다께시마(독도)에 대한 대처가 더욱 힘들다. 일장기를 불태우거나 일본대사관으로 밀려오는 민중의 반일운동을 진정시키기는커녕, 대통령까지 [외교전쟁도 가능하다], [우리(한국)는 승리할 것이다]라고 시비를 거는 한국에 대항할 의미도 없다.


표1: 4월 6일자 각 신문에 나온 사설과 여러 논평

A 사설

아사히

[이런 교과서로 괜찮은가]-[만드는 모임]의 역사교과서는...교실에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도쿄

[역사에는 냉정한 태도로]-교과서 검정은 독립된 제3자에게 맡기자.

마이니치

[국가의 관여, 적게 할 궁리를]-교과서 검정을 그만두고 자유발행제로.

요미우리

[검정, 채택은 일본의 국내문제다]-외국의 압력을 결코 용서치 않는다

산케이

[(좌파교과서의)기술시정은 아직 불충분]-일본의 과거만을 어둡게, 심술궂게 묘사하려는 자학사관이 남아 있다.


B 여러 논평

넷21

역사를 왜곡하고, 전쟁을 찬미하는...[위험한 교과서]를 아이들에게 건네줘서는 안 된다.

적기(赤旗)

침략미화 교과서 다시 합격

TBS(츠쿠시 테츠야)

이웃과 잘 지내지 못하고 세계와 잘 지낼 수 없다

중국정부

침략을 부정하고 미화하는 역사교과서...에 분노.

한국정부

일본정부가 나름대로 노력한 건 인정하지만...꽤 부족한 부분이 있다.


 이에 대해 일본 매스컴의 대응모습은 각양각색으로 꽤 차이가 난다. 표 1은 검정결과가 공표된 4월 6일자 주요 각 신문의 사설(제목과 요점)이다. 각 신문사에는 수일 전에 배포되어 논설위원이 세세히 검토할 시간이 있었을 텐데도 예상대로 와카미야 논설주간이 썼다고 생각되는 아사히 사설은 한국정부의 공식반응을 웃도는 [반일]적인 논지였다.

 책임회피를 의식해서인지 조금은 둘러말하는 기술을 사용하고 있지만, 와카미야 사설의 [주장]을 3가지 점으로 집약해 필자 나름대로 파헤친 해설을 덧붙여 보겠다.

 (1)[만드는 모임]교과서의 史觀(사관)비판

 (2)다께시마(독도) 영유권을 다투지 마라

 (3)채택되지 않도록 운동을 권유

 우선 (1)에 대해, 4년 전인 검정 때와 비교해 [특공대원의 유서]는 사라졌지만, [신무천황의 東征이 한 페이지나 쓰여 있다]는 둥, 오키나와전의 [히메유리부대와 집단자결 등의 비극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둥, [교과서검정에서 수정되었지만, 애당초...한국합병에 대해 일부에서 합병을 받아들이는 의견도 있었다](필자 注: 맞는 사실이다)고 쓰는 등, 요약하면 [근현대사를 일본 형편에 맞게 좋게 보이려는 역사관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아사히 역사관과 맞지 않는 건 쓰지 마라, 쓰더라도 짧게 써라, 수정으로 고치기 전의 꿍꿍이도 놓치지 않겠다는, 전쟁 전 일본의 검열을 방불케 하는 [오점 찾기] 근성이 엿보인다.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난 건 전날 한국정부가 [일본정부가 나름대로 (검정에) 노력한 건 인정하지만](6일자 아사히)이라고 말한 것처럼, 꽤 꼼꼼한 검정 덕에 파고 들어갈 틈이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분한 어조로 [근린제국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124부분이나 수정부분이 있었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2)에선 완전히 어조를 바꿔 공민교과서 원문이 검정으로 [한국이 불법점거]로 수정된 것에 대해 [검정으로 그렇게까지 요구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이의를 제기한다. [다께시마(독도)는 한국에 양보하라]는 와카미야의 제언에서 보면 [불법점거]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독자가 줄면 곤란하기 때문에 의문형으로 참았는지도 모른다.

 (3)도 역시 빙 둘러말하고 있다. [4년 전,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교실에서 사용하기에는 (후소샤 책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번에도 같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두세 번 다시 읽어 봐도 진의를 파악하기 어려운 문장이지만, 13줄 떨어진 최종부분에 [중요한 건, 어느 교과서로 배우는 가이다. 보호자와 교사도 잘 보고⋯⋯아이들에게 적절한 교과서를 각각의 지역에서 선택했으면 한다]는 것을 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밑줄 부분을 연결해 읽어보길 바란다. [적절하지 않다]고 단정 지은 후소샤 책은 사용하지 말라고 선고하고 있으며 이 이외의 교과서 중에서 [적절한] 걸 채택하십시오, 라고 전국 각지의 교육위원회 등의 관계자에게 호소하고 있다.

 나머지 7개 출판사의 교과서 중에도 아사히의 역사관에 맞지 않는 게 있겠지만, 이는 묻지도 않고 후소샤 책만을 지명해서 불매를 장려하는 건 집필자에겐 명예훼손, 출판사에겐 영업방해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어찌됐든 수백만부의 부수를 파는 큰 신문사에 어울리지 않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원정대가 찾아온다.

 아사히 이외의 신문 사설과 중국 정부 등의 논평은 표1에서 거론했기 때문에 천천히 읽고 비교해 주시길 바라며 해설은 생략하지만, 필자가 추천하는 대학 수강생에게 들은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하겠다.

 표1 가운데 아사히, 넷21, TBS, 중국정부, 한국정부 5항목을 열거해 누구의 논평인지 알리지 않고 [가장 과격하고 반일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떤 것인가]라고 묻자, 111표 가운데 넷21이 압도적인 1위(87표), 중국정부가 2위(20표), 아사히가 3위(4표)로, TBS와 한국정부는 표가 없었다.

 그럼 중국과 한국정부를 제치고 정상의 자리를 차지한 넷21(정식으론 [아이들과 교과서 전국 넷21])은 어떤 조직인가. 홈페이지를 보면 [이 모임은 가영(家永)교과서재판지원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1998년 6월 13일에 결성된 모임]이라고 한다.

 [(교육의)문제를 지구규모로 생각하고 지역에서 행동한다]고는 하지만 최근 수년 동안은 활동의 과반수를 [만드는 모임]교과서의 배제와 퇴치, 채택저지활동에 투입하고 있는 것 같다. 필자처럼 [다양한 사관의 신문과 교과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넷21 등이 저번에 채택률이 0.039%에 불과한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에 왜 이상할 정도로 적의를 불태우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아사히와 마찬가지로 검정제도폐지론을 주장하고 있는데도 [문부과학성은 검정합격을 취소해야만 한다]는 둥, [검정합격은 근린제국조항과 무라야마 담화 등의 국제공약위반]이라고 단정하고, 한편으론 [파면]을 요구하고 있는 문부과학성 장관의 권한을 빌리려는 (넷21의) 모순은 개의치 않은 모양이다. [각 지역에서 이 교과서를 채택하지 못하도록 소리를 높이고, 관계기관에 대한 요구를 강화합시다]라는 호소도, 쇼와(1920년 후반) 초기에 군부의 힘을 빌려 반대당을 치기에 열중했던 정당이 몰락했던 옛일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이들의 범상치 않는 조직력과 행동력은 쉽게 볼 수 없다. 넷21의 사무국장인 타와라(俵義文) 씨의 홈페이지에는 [침략전쟁을 위한 부국강병책]탓으로 11명 형제의 막내로 태어나 아버지를 농약의 폐해로 잃고, 힘들게 공부하면서 [자본론]을 배웠던 [출생과 성장]의 기록과 함께 26개의 임원직 이름과 긴 활동경력이 게재되어 있다.

 직함에는 출판노동연맹, 중국인 전쟁피해자의 요구를 지지하는 모임, 일본의 전쟁책임자료센터, 바우넷ㆍ재팬, 역사교육 아시아 네트웍ㆍ재팬 등, 활동경력에는 한국의원연맹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는 둥, 북경에서의 [역사인식과 전후보상]심포지엄과 평양에서의 [일본의 과거청산을 요구한다]심포지엄에 초청되어 보고한 경력부터, 야스쿠니신사참배 위헌소송의 원고로 동경지방재판소에서 의견진술을 했다는 둥, 일한청소년 역사체험캠프에 인솔 책임자로 한국에 간 것 등, 몇 페이지에 걸쳐 꽉 채워져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당한다.

 표1의 넷21 성명도 미리 중국과 한국의 우호조직과의 공동 어필이라는 체제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채택경쟁이 최고조에 달하는 6월경을 감안해 한국 원정대를 맞아 채택저지활동을 前回(전회) 이상으로 활성화시키기 위해 이미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게 홈페이지의 집회행사안내로 엿볼 수 있다.

 4월 스케줄만 보더라도 24회, 주요 행사로 여겨지는 4월 24일의 [<만드는 모임>교과서 채택을 저지하자! 동경집회](치요다 공회당)의 후원금액(1구좌 500엔부터)의 송금처는 써있지만, 강연자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건 [일반인 참가가 불가]에 속하는 집회인지도 모른다.

 [연간 강연 180곳]을 자랑하는 타와라 씨가 외부적인 지휘관 역할로 모든 걸 다하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 외에도 코모리(小森陽一), 다카지마(高島伸欣), 다카하시(高橋哲哉), 강 상중, 사토우(佐藤學)라는 친숙한 이름이 등장한다. 우리들이 진정 알고 싶은 건 집회안내보다도 구체적인 저지계획 수법이지만 이건 알릴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필자가 아는 친구 중엔 아사히 사설의 권위도 최근엔 떨어지고 있고, 넷21 계통의 영향력도 여론을 움직일 힘은 없을 것이다, 다께시마(독도) 양도론도 [피리는 불어도 춤추지 않는다(=그렇게 되도록 힘을 써도 이에 응하지 않는다)]고 낙관하는 사람이 많고, 필자도 처음엔 동조했지만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 징후가 보인다.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지만 아사히와 견주는 반일파의 거점 혹은 광고탑이기도 한 이와나미서점의 월간지인 [세계] 5월호(4월 10일 발매)에 다께시마(독도) 양도론이 2개나 게재됐기 때문이다.

 하나는 [월간지 “세계” 편집부]가 집필한 [격동의 남북조선]이란 제목의 논고로 1905년 2월 시마네현으로의 [편입이 일본 영유권의 하나의 근거가 되고 있지만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정부는 다께시마(독도)를 일단 조선영토라고 인정하고 있고, <편입>도 일본의 영토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뤄진 조치다...일본은 한국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기술의 수상쩍은 부분은 밑줄 부분의 근거자료를 제시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같은 5월호에 또 하나, 다카사키(高崎宗司) 씨(津田塾大學=쯔다즈쿠대학 교수, 조선근현대사)의 논문이 다께시마(독도)의 귀속에 대해 [논거를 생략해 일본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건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전제하고, 여러 설을 소개하고 있어 근거자료라 생각하고 찾아봤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논점의 근거가 불분명하다고 생각하며 다카사키 씨의 논문을 훑어보다 깜짝 놀랐다. [현실적인 해결법]으로 다께시마(독도) 문제는 [영토문제에서 일본이 양보하고, 어업문제에서 한국이 양보하는 것도 하나의 안]이라고 쓰여 있었다. 서로 양보하자는 말로 듣기는 좋아도 섬을 점거하고 있는 한국경비대에게 총격당할 위험이 있어 일본어선이 근접하지 못하는 현 상황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국의 바다참게 200마리 대신에 섬을 영구적으로 바치는 [불평등한 교환]이 될 수 있다. 대포동기지를 만들지 않겠다고 서약하게 만드는 편이 그나마 나을지도 모른다.

 다카사키 씨는 또한 최근의 일한관계의 악화는 [일본정부와 국민의 역사인식이 얕은 데에 대한 불신감의 폭발]이라며 책임을 전면적으로 일본에 전가하고 있다.

 같은 편인 와다 하루키(和田春樹=동경대 명예교수)도 前回(전회) 교과서검정공표 시 한국정부가 이례적인 수정요구를 제출했을 때 [일본정부에 (수정요구를) 보내 주신 것에 대해 마음으로 감사드리고 싶다](와다 [동시대비평], 193페이지)며 한국의 좌파계 [한겨레]신문에 쓸 정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이제 와서 [친일파]로 전향하는 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덧붙여 신경 쓰이는 에피소드를 또 하나 소개하면, 얼마 전 사이타마현 후지미시의 지인으로부터 [아들이 다니고 있는 중학교의 교사가 다께시마(독도)는 한국 영토라고 가르쳐 아들이 반신반의했지만, 와카미야 칼럼의 영향은 아닐까]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권위가 있고 없음에 상관없이, 아사히가 발신하는 메시지는 중계점에서 차례로 증폭되어 예상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하시는 일부러 [國賊(국적)]이라 불리는 것을 각오하고 [반일]캠페인을 계속할 생각인지. 이 부분을 좀더 검토해 보자.


아사히 사설의 亂調(난조)를 파헤치다

 최근엔 그다지 듣지 못하는 [國賊(국적)]이라는 명예훼손풍의 말을 꺼내든 건 이유가 있다. 다름 아닌 와카미야 논설주간 자신이 전에 쓴 칼럼에서 [섬을 포기하라고 말하면 <國賊(국적)>비판이 눈에 보이지만, 아무리 위세가 좋아도 전쟁은 불가능하고, 섬을 되찾을 수 있는 전망은 없다]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아사히의 OB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이건 매국노라고 불러 주십시오, 라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아사히에는 독특한 자학사관이 있지만 드디어 영토포기까지 말을 꺼내는 구나, 라는 느낌입니다]([주간신조=週刊新潮] 4월14일호)말한 것처럼, 정말 이런 뜻으로 말한 것이라면 교정의 여지가 없다고 봐도 좋을지도 모른다.

 와카미야 씨는 동경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1970년에 입사한 소위 전공투(全共鬪=全學共鬪會議의 약칭)세대지만, 정치부장, 논설 부주간을 거쳐 2002년 9월부터 주간이 되었다. 정치부에서 자라 정치가를 담당하는 기자도 했기 때문에 시야가 넓고 감각도 유연한 현실주의자라고 평가되었다. 실제로 딱딱한 아사히 좌익이었던 사에키(佐柄木俊郞) 씨와 교대한 직후에 쓴 논설과 칼럼은 신선하고 유연한 인상을 풍겨 아사히본래의 자유로운 노선으로 전환하는지 필자는 기대했다.

 와카미야 씨는 사설 외에, 한 달에 1번 간격으로 [풍고계(風考計)]라는 칼럼을 쓰고 있다. 後者(후자)는 [논설주간](논설위원장)이란 직함이 들어가 部外(부외) 사람은 사설(社說)로 받아들이겠지만, 사내에선 개인의 에세이로 통하는 모양이다. 일부러 [풍고계(風考計)]에 까지 쓰는 건 논설위원실이 1명인가 2명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옛 전공투(全共鬪) 계통의 흐름을 따르는 옛 좌익출신이기 때문에 출신이 다른 논설주간은 1년도 안 돼 구박받고 쫓겨나는 건 아닐지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분명, 당초엔 사설도 [풍고계(風考計)]의 논조에는 많은 격차를 보여 불협화음이 두드러졌다. 한두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2001년 9ㆍ11사건 때, 미국에 체제 중이었던 와카미야는 다른 일본인 동료와 함께 [America, We are with you](미국이여, 우리들은 함께 있다)는 전면 광고를 워싱턴 포스트에 냈지만, 당시의 심정을 [자유사회의 형이 이런 식으로 굴욕적인 도전을 받은 사실을 보고 나는 마음이 아팠다](2004년 10월 31일자 풍고계(風考計))고 돌아보고 있다.

 무엇보다 제목이 [미국 “with you(너와 함께)"라고 말하게 해줘]였기 때문에 이라크전쟁이 한창 중일 때 반미논조를 드높였던 아사히의 논조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반년 전에는 3명의 일본인 NGO가 이라크 무장세력에게 인질로 잡혀 자위대 철수를 요구하는 (일본)여론이 나눠졌던 일은 우리들 기억에 새롭다.

 와카미야 씨는 [자위대가 없었다면 이런 사건도 생기지 않았다]고 반발하는 논설위원들의 주장에도 굴하지 않고 [협박으로는 철수할 수 없다](2004년 4월 10일자)는 사설을 낸다. 고이즈미 수상도 만나 공감했기 때문인지, 외부에서도 [아사히가 배신하는가]라고 항의가 와 잠을 못 잤다는 내부이야기를 당당하게 풍고계(風考計)(2004년 7월 25일)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좌익패널과의 싸움에 지쳐 머리에서 나사가 빠졌는지 [(야스쿠니 참배에) 미국정부가 항의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2004년 11월 28일자 풍고계(風考計))를 마지막으로 올해에 들어선 와카미야 씨의 논설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아시아에 꿈을 쫓아]라는 제목의 정월의 사설에서는 [러시아군의 사령관인 스테셀이 일본에 항복을 말한 건 100년 전 오늘]이라고 격조 높게 시작했다. 계속해서 손문 등, 아시아의 독립 운동가들이 일러전쟁에서 일본의 승리에 환호한 모습을 소개하는 부분부터다.

 여기까진 후소샤의 역사교과서를 베낀 것처럼 생각되는 어조지만, 갑자기 EU와 비슷한 [동아시아공동체]로 이야기가 건너뛴다. 전쟁전의 대아시아주의와 [대동아공영권]도 호의적으로 소개되고, 현 상태는 역경이 많고 몽상에 가깝지만, [어떠한 역사적 대사업도 유토피아로 시작되어 실현으로 끝난다]는 EU의 시조 구텐호프 백작의 말로 마감하고 있다.

 [異常(이상)]한 북조선, [꺼림칙한] 중국,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중국을 비난하기만하는 언론도 횡행]하는 일본이라고, 어두운 재료를 열거하면서 [한류 붐] [떨어지기 어려운 일중경제의 끈] 이라는 밝은 가능성에 기대하고 있는 부분에 있다.

 그러나 분열기미의 낙관주의는 순식간에 배신당하고 다께시마(독도)를 둘러싸고 한국이 소리를 높이고, 중국에서도 센카쿠(일본명 조어도)와 유엔개혁문제로 반일데모가 분출하는 상황으로 급전환해 버렸다. 그래도 한번 동아시아공동체의 몽상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와카미야 씨는 실현을 저해하는 조건을 일본 측의 양보로 제거하려고 했는지, 종래부터의 아사히 좌익과 합류해 과격노선으로 접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필자는 관측하고 있다.

 다께시마(독도)를 한국에 양보하라는 [풍고계(風考計)]의 제언은 한 부분이었지만, 4월 9일의 [일한관계-새로운 지혜가 필요하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또다시 [다께시마(독도) 문제 등으로 사이가 벌어지는 건 현명하지 않다⋯⋯대립을 뛰어넘을 새로운 지혜를 만들어보자]고 호소하고 있다.

 조금은 불분명하지만, 문맥을 살피면 다께시마(독도) 양도 주장이라고 판단된다. 이러다가 [前주민이 반환을 간절히 원하는 북방사도]와 [전략적 가치가 높은 센카쿠(일본명 조어도)]도 러시아와 중국에 받치는 게 [새로운 지혜]라고 말을 꺼내는 건 아닌지, 필자는 우려된다.<이하생략>


*2007.11.13. 번역, 정리 독도본부 www.dokdo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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