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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開天節)

 1909년 음력 1월 15일 애국지사 나철은 서울 재동의 한 집에서 오기호•이기•유근 등 동지들과 함께 ‘단군교(檀君敎) 포명서(佈明書)’를 발표했다. 나라가 위기에 놓이자 민간에서 전해지던 국조(國祖) 단군 숭배를 교단으로 발족시켜 애국운동의 구심점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단군이 나라를 세운 음력 10월 3일을 개천절(開天節), 세상에서 교화를 마치고 하늘로 올라간 음력 3월 15일을 어천절(御天節)로 공포해 양대 기념일로 삼았다.


▶단군신화는 삼국유사와 제왕운기를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단군이 나라 세운 날을 알려 주는 자료는 단군교의 후신 대종교에 전해 오는 ‘삼일신고봉장기(三一神誥奉藏記)’다. 대종교 기본 경전인 삼일신고가 전해진 경위를 밝힌 이 글은 발해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거기에 “한배검(단군)이 무진년(戊辰年) 상달(음력 10월) 초사흗날에 신령한 대궐에 거동하사 삼일신고를 가르쳤다”는 대목을 건국으로 본 것이다.


▶일제 강점기 개천절은 민족의식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만주로 근거지를 옮긴 대종교는 물론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개천절을 기념했다. 민족의 뿌리를 상기하면서 나라 되찾기를 다짐했다. 해방 후 정부는 1949년 개천절을 4대 국경일의 하나로 선포하면서 양력으로 바꿔 매년 날짜가 달라지지 않도록 했다.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니….” 정인보 작사, 김성태 작곡 ‘개천절노래’는 여전히 살아 있지만 개천절의 의미는 날로 퇴색하고 있다. 세계화 바람 속에 역사적으로 고증되지 않는 국조 숭배는 국수주의로 폄하되기 일쑤다. 개천절 기념식엔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는 게 관례가 됐다. 서울 사직동 단군성전은 너무 초라해서 찾는 이가 안쓰러울 정도다.


▶일본에도 개천절 비슷한 날이 있다. 메이지 정부는 1872년 일본서기(日本書紀) 등 고대기록에 근거해 초대 천황 진무(神武)가 즉위했다는 2월 11일을 기원절(紀元節)로 정해 대대적으로 기념했다. 기원절은 2차대전 패전 후 1948년 폐지됐지만 1967년 ‘건국기념일’로 부활했다. 개천절은 꼭 단군이 나라를 세운 날이어서 기념하는 것은 아니다. 조상들이 오랜 세월 단군을 받들어 왔고, 그런 믿음이 어려울 때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는 힘이었기에 의미가 있다. 그런 힘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필요하다.

이선민 논설위원 smlee@chosun.com  조선일보  2007.10.03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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