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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살아남을 것인가

한글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과연 지구상에서 몇백년 몇천년 후에도 계속 쓰일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얼과 혼의 바탕이요 우리 문화의 근원인 한국어의 생존이 위태롭다면 이는 예삿일이 아니다. 반만년 역사를 이어온 민족정기의 맥이 끊기는 엄청난 사변인 것이다. 이런 염려가 한낱 가정(假定)이나 기우(杞憂)로 그치지 않고 현실화할 위험이 눈앞에 닥치고 있다.


유엔 환경프로그램에 의하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언어는 대략 5000∼7000개이며, 앞으로 100년 동안 3000개의 언어가 사라질 것이라 한다. 1년에 30개, 한달에 2∼3개꼴로 소수 민족•종족의 언어가 사어(死語)로 변하고 있다. 몇백년 후면 아마도 몇개의 중심 언어와 몇십개의 주변 언어만이 명맥을 잇게 될 것이다. 사용인구가 줄고 세계와 소통되지 못하는 언어는 급격히 사멸할 수밖에 없다. 한글이 누구나 익히기 쉬운 우수한 문자이고 한국어의 경쟁력이 탁월하다고 하더라도 국제화라는 시대의 흐름을 비켜갈 수는 없다.


한국어가 겪을 위기의 근원은 우선 사용 인구의 감소 추세다. 2007년 현재 한국어 사용 인구는 남한(4800만)과 북한(2400만)을 다 합쳐도 세계인구 66억7000만명 가운데 대략 1.1%의 비중에 그친다. 세계인구 증가율은 2005∼10년 연평균 1.7%지만 이 기간 한국은 0.3%에 불과하다. 증가율 감소 추세가 이어지면 한국 인구는 2025년 4900만명을 정점으로 2050년에는 4200만명, 2100년에는 이천몇백만명대로 떨어질 것이다. 북한 인구도 정체상태이니 희망이 없다. 이처럼 인구가 쪼그라들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또 다른 새천년을 맞이하기도 전에 사라지고, 한국어 역시 사멸될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위기 요소는 경제와 교육 문화 등 전방위적인 국제화 추세다. 세계를 무대로 하는 글로벌 기업이라야 시장을 선도하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고, 개개인도 세계와 소통해야 할 필요가 더욱 커지고 있다. 사람들은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사용자가 많은 언어를 더 익히려 하고, 이로 인해 언어에도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한국의 교육과 경제는 이미 국제화와 세계화의 급류를 타고 있다. 해외 유학과 이주가 늘 뿐 아니라 이들 가운데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 국적을 얻는 자가 늘고 있다. 외국어에 대한 관심과 조기 유학생 수가 폭증하는 추세는 거꾸로 한국어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국내 초중등 학교에서 영어 실력이 우수한 학생 수가 국어 학력 우수 학생 수를 압도하는 형편이다. 국어국문학과를 폐지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 신문과 방송에서조차 이제 봇물이 터진 듯 외국어가 범람하고 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강조한 독일의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면, 인구감소와 국제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배달겨레의 집’이 붕괴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집을 지켜낼까. 당연히 한국어 사용 인구를 늘려가야 한다. 국내에선 인구 감소를 반전시킬 정책을 강력히 추진해야 하고, 외국인 노동자와 국제결혼 가정의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해외 한글학교를 늘리고, 국제무대에서 한국어의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 중국이 세계 곳곳에 공자학원을 세우고 일본이 일본어센터를 늘려 각기 중국어와 일본어 사용 인구를 늘리고 자국의 문화 콘텐츠를 전파하듯 문화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영화와 드라마, 공연 등의 한류를 세계인이 공감하고 애호하는 콘텐츠로 가꾸고 보급해야 한다.


국제화는 불가항력의 흐름이지만 한국 스스로 그 허브이자 관문으로 교통어의 역할과 영향력을 확대한다면 한국어의 생존 가능성은 커진다.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총회에서 한국어가 국제특허협력조약(PCT)의 국제공개어로 채택된 것은 바로 한국이 세계 4위의 특허 출원국이라는 위상 때문에 가능했다. 요컨대 국제무대나 외국인에게도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언어라야 생존이 가능한 것이다.


언어는 국력을 비추는 거울이며, 그 이상이기도 하다. 옛 소련의 몰락 후 국제어로서 러시아어의 위상이 곤두박질한 게 전자의 예라면, 거의 죽었다가 부활한 히브리어가 후자의 경우다. 유대인들은 조상들의 땅 팔레스타인에 귀환하고 이스라엘을 건국하면서 지난 100년 동안 러시아계, 독일계 등 수십개국에서 이주한 사람들에게 히브리어를 철저히 교육해 왔다. 기도문 같은 종교서적에 문자로만 전해오던 히브리어는 학교와 가정, 키부츠 같은 공동체 공간에서 일상 언어로 뿌리내려 신문과 방송은 물론 영화와 소설, 산업과 학술분야에까지 활짝 꽃을 피우고 있다. 이들은 해외 유대인학교에서도 히브리어를 교육하고 모국 연수 프로그램에도 국비를 지원해왔다. 온갖 정성을 다해 히브리어를 가꾸고 사용 인구를 꾸준히 불려온 것이다.


국가의 미래를 경제 위주로만 생각해선 안 된다. 교육과 문화, 특히 언어교육의 문제는 국가의 존립과 정체성의 핵심이다. 국가백년대계를 내다보는 정부와 위정자라면, 또한 이 땅의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한국어와 한글의 미래를 함께 생각해야 할 때다.


차준영논설실장   세계일보  2007.10.08 (월)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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