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도본부는    · 시작페이지로    · 즐겨찾기    · 오시는길    · 메일보내기    · 사이트맵

2022년 05월 23일 월요일

내용검색  

약탈당한 문화재

세계마당

우리마당

재외동포

문화재

동북공정

순국선열

상고사

역사

  현재위치 > 독도본부 > 민족광장 > 역사 > 기사

 


“윤관 9성 최전방은 두만강 북쪽”

9성 바로잡기 본부 “함흥평야 주장은 식민사관”

 고려시대 윤관(尹瓘·?~1111) 장군이 개척했다는 ‘동북 9성(城)’은 과연 어디였을까? 기존 학설처럼 함흥평야 일대였을까, 아니면 두만강 북쪽 700리까지 포함하는 영역이었을까?

윤관 9성 역사바로잡기 운동본부(본부장 이형석)는 최근 교육부 장관 앞으로 ‘교과서 수정 건의서’ 한 통을 보냈다. ‘동북 9성의 최전방거점인 공험진은 두만강 북쪽에 있었으며, 이를 명백히 밝힌 내용을 8차 교육과정의 교과서 개편 때 반영해 식민사관의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북 9성’은 1107년 특수부대인 별무반을 창설한 윤관 장군이 여진족을 섬멸한 뒤 새로 개척한 땅에 쌓은 성이다. 하지만 그 위치에 대한 해석은 분분했다. 조선시대 한백겸(韓百謙) 등의 실학자들은 ‘길주(吉州) 이남 함경남도설’을 제시했다.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 등은 9성의 위치를 함흥평야 일대라고 했고, 이것은 오랫동안 정설이 됐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자 방동인(方東仁) 전 관동대 교수, 김구진(金九鎭) 전 홍익대 교수 등은 “9성의 최북단은 두만강 북쪽이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고려사’ 지리지에 “여진을 쳐서 9성을 설치하고 공험진의 선춘령(先春嶺)에 비석을 세워 경계로 삼았다”고 했는데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두만강에 접한) 경원(慶源)의 북쪽 700리에 공험진이, 동북쪽 700리에 선춘현이 있다”고 기록했고 ▲‘동국여지승람’ 회령도호부편도 “공험진은 백두산의 동북쪽에 있다”고 한 것 등이 그 핵심 근거였다. 일본 학자들이 이 기록들을 모두 무시하고 9성의 위치를 억지로 함흥 일대에 비정, 그 영역을 축소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우리 학계의 입장은 모호하다. 윤용혁 공주대 교수(고려시대사)는 “정설이 없는 상태다. 두만강 이북이라는 기록이 있지만, 그 전후 고려의 국경과 비교해 보면 너무나 북쪽으로 올라가 있어 의아하다”고 말했다. 현재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지도 없이 “동북지방 일대에 9개의 성을 쌓았다”고만 기술했고, 대부분의 사회과부도가 ‘함흥평야설’을 따르는 가운데 일부는 “위치에 대해서는 다른 주장이 있다”고 써 놓았다. 반면 북한에선 ‘두만강 이북설’이 정설이다.

공험진·선춘령이 두만강 이북에 있었다고 해도 그 위치가 확실한 것은 아니며, ①연길·용정 일대 ②영고탑(寧古塔·지금의 영안·寧安) 일대 ③돈화(敦化) 일대 등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최근 연변 일대를 몇 차례 답사했지만 선춘령의 명확한 위치는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조선일보  2007.11.19 02:31

관련
내용
관련내용이 없습니다

 

 

| 개 요 | 이 책은 2008년도에 일본 중의원에서 독도문제와 ...

 

 
  Copyright ⓒ 2001.독도본부. All rights reserved
전화 02-747-3588 전송 02-738-2050 ⓔ-Mail : dokdo2058@korea.com
후원 : 기업은행 024-047973-01-019(독도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