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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수난의 현장' 에다가와 조선학교 르포

폐교위기 넘겼지만 60년 차별 여전
  • 일본 도쿄 시내 외곽에 자리 잡은 조총련계 초등학교인 에다가와 조선학교 정문.
    일제 치하 재일 한국인의 민족 수난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이 도쿄 시내에 뚜렷이 남아 있다. 국제도시 도쿄에 하루가 다르게 초현대식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차고 있지만 이곳은 1950년대식 허름한 2층 콘크리트 건물뿐이다. 에다가와 조선학교(도쿄 조선제2초급학교) 이야기다.

    1940년 무렵 이 학교 부지는 쓰레기 매립장이었다. 일본 정부는 경기장 건설 예정 부지에 모여 살던 조선인 1000여명을 강제로 이곳에 집단 이주시켰다. 당시 오수가 넘치고 악취가 진동했던 불모의 땅이었지만 재일 조선인들은 땅을 고르고 닦아 마을을 세운 뒤, 1946년 조선어강습소를 연 데 이어 1955년 북한으로부터 1억2000만엔을 지원받아 지금의 학교 건물을 지었다. 그래서 북한식으로 ‘민족학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는 60여년이 지났지만 일본 정부는 강제 이주에 대한 ‘일언반구’ 사과 없이 방치하고 있다. 60여년간 한국말과 역사를 가르쳐 왔다는 것이 그 이유다.

    에다가와 조선학교는 심지어 지난 몇년 동안 토지공부상 소유자인 도쿄도의 압력으로 폐교될 뻔했다. 극우 인사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의 압력 때문이었다. 다행히 양심적 일본인들의 도움과 재일동포 사회의 지원, 한국내 모금 등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지난 6월 토지 비용 1억7000만엔(13억원)을 마련해 도쿄도에 지불하고 토지소유권을 완전히 넘겨 받은 것이다.

    현재 에다가와 조선학교는 교사 8명이 어린이 61명을 가르치는 ‘미니 학교’로 남아 있다.

    “민족의 말과 글을 배우고 통일의 씨앗으로 자라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살려야 하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매일 아침 저녁 손수 학교버스를 운전하면서 어린이들을 통학시켜주는 송현진(44) 교장의 말이다.

    역사적인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10월4일에는 ‘작지만 의미 있는’ 축하 파티가 이곳에서 열렸다.

    이날 한국에서 지원활동을 해온 인사 11명과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동포 10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이날 남북의 두 정상이 악수를 나누는 장면을 TV를 통해 함께 보며 ‘통일’의 감격을 나눴다. 일본의 변호사 단체 등 지원모임 인사 10여명도 함께 참석해 박수를 보내주었다.

    1946년 이 학교를 1회로 졸업한 홍한이(75) 할머니는 “빨리 조국이 통일돼 남과 북, 재일동포들이 왕래했으면 좋겠다”면서 “남쪽으로부터 큰 지원을 받아 학교가 살아나게 돼 1회 졸업생으로서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에다가와 조선학교 어린이들이 조회 시간에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이곳에는 차별과 빈곤이 여전하다. 정규학교로 인정받지 못한 탓에 일본 정부의 무상교육 혜택을 받지 못한 채 학생들의 수업료만으로 학교운영비와 교원 급여를 충당하고 있다. 그간 조총련으로부터 학교운영비조로 보조금을 받아 보탬이 됐지만 지금은 보조금이 줄었다. 최근에는 조총련의 자금난으로 쥐꼬리만한 지원금마저 끊어질 위기에 놓였다.

    민족 수난의 ‘살아 있는 역사’라고 여기저기서 떠들어대지만 그간 남한 정부로부터는 그 어떤 혜택도 받지 못했다. 조총련계라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을 하자 일본 내 양심적 시민단체들의 지원금도 끊겼다. 남한에서 민간단체와 종교단체가 지원하고 있다지만 학교 운영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6년간 우리 말, 우리 글과 우리 노래, 우리 춤도 배웠으며 조선사람으로서의 자부심도 키웠다”

    지난해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중고급학교로 진학한 한 학생의 말이다. 이 학생은 말을 이었다.

    “건물은 낡고 오랜 세월 비바람을 맞아 여기저기에 얼룩이 져 있기 때문에 운동장에 학생들만 보이지 않으면 영락없이 허름한 공장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 학교 건물을 낡은 공장으로 본다. 겉만 낡은 것이 아니다. 비가 내리면 천장 여기저기서 물이 샌다”

    일본 내 모든 초등학교는 학교 운동장이 우레탄으로 덮여 있어 운동하기에도 좋고 다칠 염려도 없다. 그러나 에다가와 조선학교는 흙먼지 날리는 맨 땅의 운동장이다. 비가 오면 질퍽해 운동장에 들어갈 수가 없다. 맨 땅 운동장의 학교는 도쿄 시내에서 에다가와 학교뿐이다.

    지금은 이 학교에서 이념적 색채나 동포사회의 대립적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다. 교무실에는 북한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사진이 아직도 걸려 있지만, 이는 조총련에서 조금씩이나마 보조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2001년부터 남북화합시대에 맞춰 남한쪽 생활이나 사회·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학교는 이미 대립의 시대를 지나 화합의 시대로 접어든 시대 흐름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에다가와 조선학교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활발히 뛸 수 있는 운동장만이라도 만들어 아이들이 더 이상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소박한 희망을 갖고 있다.

    에다가와 조선학교 송현진 교장 '새해소망'

    “땅 사는 문제를 잘 타고 넘었으니 이제 훌륭한 학교를 지어 우리 민족 어린이들을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스스로 통학버스 운전기사라고 부르는 도쿄 에다가와 조선학교의 송현진(44·사진) 교장은 새해 남다른 각오를 내비쳤다. 송 교장은 1일 세계일보 기자와 만나 올해 포부를 펼쳐보이면서 에다가와 학교가 60여년 전통의 민족학교로서 거듭나기를 기원했다.

    ―새해 학교 운영에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재일동포 3, 4세로 내려갈수록 민족 정체성을 잃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정체성을 잃는다는 것은 자신을 잃는 것과 다름없다. 남북한 화해시대에 맞춰 제대로 된 역사교육, 사실 그대로의 민족교육이 중요하다. 60여년 전 북한에서 학교를 지어주었고 지금은 조총련에서 도와주다 보니 북한 학교라는 인식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교과서를 자체 제작해 교육하기에 전부 북한식 교육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올해 가장 큰 사업 계획은.

    “종합적인 시설로 학교를 다시 만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정규 학교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사설 교육기관 정도로밖에 인정되지 않고 있다. 이 탓에 졸업생들의 상급학교 진학에 어려운 점이 있다. 특히 학비가 무료인 일본 공립중학교를 진학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 하지만 정규학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북한이 어려우니 남한 정부가 나서서 정규학교로 인정받도록 해줄 방안은 없을까.”

    ―학교 부지를 되찾았으니 이제 학교를 다시 지어야 할 텐데.

    “학교를 다시 지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다. 부지 문제가 해결됐으니 내년에는 재일동포 단체 등과 협력해 학교 건물 신축이나 최소한 리모델링 정도는 시작해야 한다. 남한 쪽 국민과 시민단체들의 관심이 좀더 많았으면 좋겠다.”

    ―일본 쪽에서 지원받는 방안은 없는가.

    “일본 시민단체 가운데 에다가와지원모임 등이 있고, 아이들을 위한 도쿄도민기금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북한과 일본정부의 관계가 서먹서먹한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그 사정을 우리도 이해한다.”

    ―학생들의 국적 현황은.

    “어린이들이 현재 61명인데 조선(북한) 국적과 한국 국적이 거의 반반씩이다. 일본인과 결혼한 학부모들은 일본 또는 조선, 남한 등의 이중국적을 갖고 있으나 국적은 큰 문제가 아니다. 국적이 다르다고 해서 학교 생활에 불편한 점은 거의 없다.”

    남한이 고향이라고 밝힌 송 교장은 1985년 도쿄 시내에 있는 북한계 조선대학을 졸업한 직후 평교사로 이 학교에 부임해 지금까지 외길을 걸어왔다.

    도쿄=정승욱 특파원 
    jswook@segye.com  세계일보  2008.01.02 (수)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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