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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금관은 한민족 고유 창작품”

《신라 금관의 형태가 시베리아 샤먼의 모자에서 비롯됐다는 이른바 ‘북방 기원설’을 정면으로 반박한 연구서가 동시에 나왔다. 임재해 안동대 민속학과 교수는 ‘신라 금관의 기원을 밝힌다’에서, 박선희 상명대 사학과 교수는 ‘우리 금관의 역사를 밝힌다’(이상 지식산업사)를 통해 “신라 금관은 북방의 영향을 받지 않은 우리 민족 고유의 창작품”이라고 말했다. ‘신라 금관은 시베리아의 샤먼들이 썼던 사슴뿔 모양의 모자를 본떠 만들었다’는 게 학계의 통설이다.》

‘시베리아 사슴뿔 모자서 유래’ 통설 반박 연구서 2권 나와

임 교수는 우선 사슴뿔 모양을 따라했다는 설에 대해 “신라 금관의 세움장식은 대부분 5개며 더러 3개인 것도 있으나 2개인 경우는 전혀 없으므로 사슴뿔 한 쌍의 모양을 장식한 시베리아 무관(巫冠)과는 모양부터 다르다”고 지적했다.

또 신라금관의 세움장식 끝부분이 ‘♤’ 모양으로 처리된 점에도 주목했다. 그는 ‘움(새순)’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세움장식을 사슴뿔 모양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은 ‘♤’모양과 사슴뿔의 연관성을 밝히지 못해 아예 해석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의 이런 연구는 신라 김씨 왕족의 시조인 김알지 신화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신라 금관의 줄기 부분은 김알지가 최초로 발견된 계림(鷄林)의 신성한 나무(신수·神樹)를 형상화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김씨계의 왕권 세습이 본격화되던 시기와 신라 금관이 출현하기 시작한 시기는 5세기로 일치하는데 김씨계가 왕권 강화를 위해 시조 신화를 금관에 담았다는 것.

그는 “금관의 세움장식이 신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하면 나무의 새순인 움(♤) 모양 장식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이 밖에 △새 모양 장식이 붙은 신라 금관이 있다는 점 △태아 모양의 곡옥(曲玉)이 장식품으로 달려 있다는 사실을 들면서 “닭 울음소리를 통해 황금궤 안에 있던 아기(김알지)가 발견됐다는 알지 신화와 연관지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임 교수는 “기존의 시베리아 기원설에만 매달리는 학계의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려고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신라 금관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임 교수의 주장에 대해 “임 교수의 해석은 김알지 신화가 핵심인데 그 신화가 금관이 출현하기 시작한 5세기에 만들어진 것인지 후대에 만들어진 것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며 “시베리아 샤먼의 모자에서도 사슴뿔 모양 외에 나무 모양도 많이 나타난다”고 반박했다.

박선희 교수는 책에서 고조선시대 이후 나타난 관모(冠帽)의 형태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신라금관의 원형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는 특히 관모의 한 형태인 절풍(折風)에 주목했다. 한민족은 고대부터 머리를 올려 상투를 트는 고유한 머리 양식을 해왔는데 절풍은 상투를 튼 머리에 알맞은 관모 양식으로서 북방 지역에는 이런 양식이 없다는 것.

박 교수는 “신라 금관이 출토될 때 금관 속에 쓰는 절풍도 함께 나왔다”면서 “고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관모 전통이 신라 금관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동아일보 2008.05.2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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