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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측 4가지 주장에 대한 반박

동북공정은 ‘날조공장’

중국측이 최근 수위를 높인 ‘동북공정’의 새로운 왜곡 내용에 대해 국내 학자들은 “정치 논리에 의해 기본적인 사료 비판조차 무시한 결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부분들에 대한 반박을 요약한다.

1. 기자조선은 역사적 실체 아닌 전설

―기자조선은 중국 은(殷)나라의 후예들이 한반도에 건립한 지방정권이었다. 기자조선이 있었기에 위만조선·고구려·발해도 있었다.(중국측 주장)

“기자조선 관련 사료는 신빙성이 없어 학계에서 역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중화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역사가 아닌 전설까지 끌어들이는 것이다.”(조법종 우석대 교수)

“설사 기자·위만이 중국의 망명객이었다 해도 이들은 중국 정부가 파견한 인물들이 아니었다. 중국의 논리는 후지모리가 페루에서 대통령을 했다고 페루가 일본사가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서길수 고구려연구회 이사장)

2. 한강유역은 당연히 우리 땅이었다

―전국시대(戰國時代·기원전 5~3세기) 연(燕)나라 영토는 한반도 한강 유역까지 확대됐다.(중국측 주장)

“연나라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일부 유물이 랴오둥(遼東) 지역 등에서 출토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문화적으로 왕래한 흔적일 뿐 직접 이 지역을 지배했다고 볼 수는 없고, 한강 유역까지 지배했다는 것은 더욱 근거가 없다. 한강 유역은 삼한(三韓) 중 마한의 땅이었다.”(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

3. 발해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한 독립국

―발해는 당나라에 귀속된 일개 지방정권이었으며, 정권을 세울 당시 ‘말갈’을 정식 국가로 사용한 말갈족의 국가였다.(중국측 주장)

“발해는 ‘말갈’이라는 국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중국측 사서에서 발해를 ‘말갈’이라 부른 것은 초기에 일방적으로 낮춰 부른 것이고, 서기 713년 정식으로 국교를 튼 이후엔 ‘발해’라 제대로 불렀다. 당시 당나라가 발해왕을 ‘책봉’한 것은 통상적인 외교적 승인 행위에 불과하다. 발해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고 왕을 황상(皇上)이라 부르는 등 매우 자주성이 강한 독립국이었다.”(한규철 경성대 교수)

4.백두산 정계비가 가짜라는 주장은 억지

―1713년 조선이 국경 경계비석(백두산 정계비)을 세울 때 멋대로 장소를 변경하는 국제적 사기를 저질렀다.(중국측 주장)

“중국의 주장은 백두산 정계비의 존재에 대해 당혹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간도 영유권 문제가 국제법상으로나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고대사인 기자조선부터 부여·고구려·발해까지 모두 중국 역사라고 왜곡해 간도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다. 동북공정의 목적이 역사 문제에 그치지 않고 영토와 조선족 문제에 있음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조법종 교수)

유석재기자 karma@chosun.com  조선일보  2006.09.11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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