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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넘어 ‘백두산공정’ 시작됐다

장시간 기도·명상도 전면 금지… 지안박물관은 동북공정 결정판


▲ 1일 백두산 천지 밑자락에 자리잡은 간이 매점과 숙소. 라면 커피 등을 팔고 쓰레기는 소각시켜 메케한 냄새가 나고 있다. 백두산 = 김선규기자  

한(韓)민족의 시원(始原)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고구려사의 자국사 편입으로 시작된 중국의 동북공정이 고조선과 발해사까지 넘나들면서 축소와 왜곡 일변도로 흐르고 있다.

이같은 역사 왜곡은 단순히 관변 학자들의 주장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국 동북부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24일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천지에 올랐다. 백두산이란 명칭은 ‘고려사’의 광종 10년에 처음으로 나타나며, 원명은 태백산 또는 삼신산이었다. 삼국유사엔 환웅이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신시에 도읍하여 한민족 최초의 국가를 연 것으로 기록돼 있다. 고조선이 백두산에서 시작한 것이다.

한민족의 시원을 연 이 곳에서도 중국측의 ‘백두산 공정’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일체의 천제(天祭)를 못 지내게 하는 것은 물론, 플래카드를 내걸고 사진을 찍는 것도 허용치 않았다. 심지어 장시간 앉아서 명상이나 기도를 하는 것도 금지했다.

비록 한국 관광객들에게 입장료를 받아 짭짤한 이익을 챙기는 것은 흐뭇한 일이지만, 백두산을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여기는 한국인들의 신념은 못마땅하다는 투였다.

오늘날 중국에서 발행한 서적이나 관광 안내책자에선 태백산이나 백두산이라는 이름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창바이산(長白山)이란 그들의 용어만이 쓰일 뿐이다. 게다가 중국은 오는 2018년 동계 올림픽 유치를 목표로 백두산에 국제 스키장과 호텔 등을 만들고, 도로망을 확충하며, 인근 지린(吉林)성 무송(撫松)현에 공항까지 건설할 예정이다. 표면적으로 ‘낙후 지역 개발차원’임을 내걸고 있지만 한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오로지 외화벌이 수단으로 삼겠다는 속셈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한민족의 자존심과 백두산에 대한 염원을 무참히 짓밟겠다는 의도까지 엿보인다. 중국의 이른바 ‘백두산 개발’은 이미 지난 2004년 6월 백두산 자연보호구역 입구에 ‘중화명산(中華名山)’이란 간판이 걸리고, ‘중국 10대 명산’에 백두산을 선정하면서부터 가시화됐다. 더욱이 오는 2008년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 등재까지 추진할 계획이다.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까지 자신들의 지방정권으로 규정, 한민족의 뿌리를 끊는‘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이 이제 ‘백두산 공정’을 통해 한민족의 뿌리를 끊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날인 25일엔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였던 중국 지린성 지안(集安)을 찾았다. 직접 둘러본 지안은 이미 중국의 동북공정이 완료단계에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줄 정도로 철저히 ‘중국화’ 돼 있었다. 고구려 유적들이 한마디로 돈벌이를 위한 ‘관광 자원’으로만 활용되고 있을 뿐, 정작 중요한 문화유산 보호는 생색내기에 불과했다.

우선,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광개토대왕비는 여전히 유리로 둘러싸인 좁은 방안에 갇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세계문화유산 역사적 축영(縮影) 인류적 문명’이란 플래카드를 내걸어 중국이 지난 2004년 7월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것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광개토대왕비와 불과 10여m 떨어진 곳에 험상궂게 생긴 경비견을 두고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경비원 서너명이 광개토대왕비 근처를 상시 맴돌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비석 사진을 찍는 것은 허용하지만, ENG카메라 등으로 동영상을 촬영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눈초리는 예사롭지 않았다. 동영상을 찍다 발각되면 그 자리에서 여권을 압류 당하고 해당 여행사까지 제재를 받는다고 한다.

이처럼 삼엄한 경비에 비해 안내판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가로 80여㎝, 세로 40여㎝ 쯤 되는 판에 ‘호태왕비’라는 간단한 제목만을 달고 비석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었다. “비에는 고구려 건국 신화와 초기 왕조의 체제, 호태왕의 정복사실 등이 기록돼 있다”는 간략한 설명에 불과했다.

비석과 불과 500m 거리에 있는 태왕릉(광개토대왕릉으로 추정)의 몰골은 더욱 처참했다. 거의 무너져 내리다시피 한 능에 철제 계단까지 만들어 일반 관광객들이 관이 놓여있던 무덤 안까지 수시로 출입하게끔 허용했다. 게다가 무덤 안에는 중국 경비원이 한 명 지키고 앉아 사진 촬영을 못하게 막고 있었다. 사진 촬영 금지에만 혈안이 돼 있을 뿐 정작 관광객들이 돌 위에 올라가는 것은 방치해 두고 있어 무엇을 위한 경비인지 분간치 못할 정도였다.

이처럼 앞뒤가 바뀐 경비는 태왕릉과 1㎞쯤 떨어져 있는 장군총(장수왕릉으로 추정)도 마찬가지. 단지 다를 게 있다면 장군총엔 나무 계단을 만들어 그나마 석제에 쇠파이프를 박는 어처구니없는 작태는 면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일반 관광객들이 장군총 상부까지 곳곳을 오르내리며 1500여년의 세월을 견뎌낸 유산을 위태롭게 하고 있었다.

이어 찾은 고구려 고분 ‘오회분 5호묘’의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개방으로 인해 바깥 공기가 안으로 유입되면서 결로 현상이 심각했다. 거의 물이 흘러내릴 정도로 습기가 가득차 있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사신도로 유명한 오회분 5호묘를 지금 상태로 방치할 경우 머지않아 벽화 자체가 소멸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지안 박물관’이었다. 100여평 남짓한 전시실 두 곳만 마련돼 있는 지안시 박물관은 출입문 정면에 광개토대왕비 4면의 비문 탁본을 걸어놓고 있었다. 탁본 앞에 놓여있는 전언(前言·Foreword)엔 ‘중국 북동부의 지방정권(Local Regims in Northeast China)’이라고 고구려를 소개하고 있었으며, ‘서기 668년 당나라에 의해 멸망했다’고 명기, 철저하게 고구려를 축소 소개하는데 급급했다.

두 곳의 전시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입구 좌우에 ‘고구려 조공 수봉 연표’ ‘고구려 유민 이주 현황’ ‘고구려 역대 왕조 중원 왕조 연대 대조표’ 등의 소개문을 설치, 고구려가 대대로 중국에 복속된 지방정권에 불과했음을 부각시키고 있었다. 정작 관심을 기울여야 할 유물 전시는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지난 1988년 설립된 박물관은 2004년 지안시 소재 고구려 유적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함께 대규모 증축을 했다고 박물관 관계자들이 밝혔다. 하지만 그 규모나 내용 면에서 “여기가 고구려 400년 수도의 유적을 모아둔 박물관인가”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박물관의 초라한 단층 건물 뒤편으론 대형 건물을 짓느라 크레인들이 한창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어 묘한 대조를 이뤘다. 마치 홀대받는 고구려 유적과 경제적 비약을 자랑하는 오늘날 중국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발길을 옮긴 환도산성과 그 아래에 있는 산성하 무덤떼는 2003년 중국측의 대규모 유적 발굴 이후 후속 작업으로 체계적인 복원이 이뤄지지 못한 가운데 훼손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보였다. 지안시내에서 2.5㎞ 가량 떨어진 이곳에는 고구려 귀족의 적석묘와 봉토묘 등 1582기의 고분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세계 최대의 고분군으로 불리고 있지만 봉토식 무덤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과거의 위엄은 사라지고 없었다.

중국 지안시의 고구려 유적은 한마디로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로 취급받고 있을 뿐, 동북아의 맹주로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고구려의 위용은 온데 간데 없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우리의 무관심이 가져온 처참한 현장이었다.


▲ 기상대가 있는 천문봉 일대. 최근에는 군부대(가운데 파란지붕)까지 들어섰다.


▲ 소천지와 장백폭포로 이어지는 계곡에 포크레인 을 동원한 공사가 한창이다.


▲ 백두산 천문봉 정상에 오른 한 중국관광객이 천지를 향해 소변을 보고 있다.

지안 =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문화일보 200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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