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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한인(韓人) 신문이 안중근 의거 주도'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

▲ 1923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창간된 신문‘선봉’의 제100호(1925년 11월 21일). 사회주의와 항일운동의 색채를 강하게 띠었다.

  "일본에 정치가로 유명한 이등(伊藤)이가 할빈(하얼빈·哈爾濱)으로 오난 길에 마침 정거장에 내릴 때에 한국사람 하나가 이등을 향하야 총으로 쏘아 중상한고로…." 안중근(安重根) 의사의 하얼빈 의거가 일어난 지 이틀 뒤인 1909년 10월 28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된 한인 신문 '대동공보(大東共報)'는 이를 신속 정확하게 보도했다. 또한 다음날부터 사건의 정황을 상세히 알리는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최근 방일영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서 《러시아지역 한인언론과 민족운동》(경인문화사)을 출간한 박환(朴桓) 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그 이유에 대해 "러시아 한인 신문이야말로 바로 안중근 의거를 주도한 핵심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저격 모의가 이뤄진 곳이 바로 대동공보사의 사무실이었고, 안중근 의사는 이 신문의 통신원이었다.
  박 교수의 책은 러시아 지역 최초의 한글신문인 '해조신문(海朝新聞)' 창간 100주년에 맞춰 나왔다. 이 책은 그 100년 동안 연해주와 중앙아시아에서 발행됐던 한인 신문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이자 통사(通史)다. "러시아 쪽 자료 접근의 어려움 때문에 지금까지 이 분야의 연구가 이뤄지지 못했지요. 하지만 20세기 초 연해주는 항일독립운동의 중심지나 다름없었고, 이곳에서 발간된 신문들은 독립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박 교수는 집필을 위해 16년 동안 블라디보스토크 극동문서보관소 등 러시아 곳곳에서 5만여 건의 자료를 수집했다.
  구한말의 '해조신문'과 '대동공보'로 시작된 러시아 한인언론은 1910년대 '권업신문(勸業新聞)'과 '대한인졍교보'로 계승됐다. 이들 신문은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일본의 만행을 규탄했다. '권업신문'에 참여해 글을 쓴 사람들은 신채호, 이상설, 장도빈 등이었으며, 105인 사건과 의병 운동을 비롯한 숱한 항일운동 기사들이 지면에 실렸다.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 있던 1917년 러시아 혁명 발발 이후 한인언론의 상황에 대해서도 이 책은 상세히 밝혔다. 특히 혁명기의 공산주의 계열 한인 언론들이 주목되는데, '동아공산' '붉은긔' '새세계' '신생활' '로동쟈' 등이 그것이다. 이 언론들은 사회주의 사상을 독립운동의 방편으로 받아들이며 조선의 독립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 교수는 "당시 일본이 시베리아에 출병하며 제정 러시아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러시아 한인들에게는 혁명에 동참한다는 것이 곧 항일과 같은 의미였다"고 말했다.
  혁명기 이후 1930년대까지 발행된 '선봉' '연해주어부' '광부' 등 사회주의 선전지들은 민족주의와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역할을 계승했다. 그러나 1937년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면서 '선봉'만이 살아남아 '레닌기치'로 이름을 바꾸고 1938년 카자흐스탄에서 첫 호를 간행했다. 1987년까지도 소련 신문의 한글판이라는 성격이 강했지만 1988년부터 다시 고려인의 민족적 문제들을 다루기 시작했고, 1991년부터는 '고려일보'로 이름을 바꿔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적극적으로 고려인의 권리를 주장하며 개혁·개방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노력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조선일보     2008.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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