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6월 독도에서 조업 중이던 어민들은 혼비백산했다. 난데없이 나타난 미 공군기의 폭격에 당시 조업 중이던 배들과 승선 어민들은 바다에 수장됐다. 미군정 하에서 아직 한국에 정부가 수립되기 전의 일이다.
그러나 정부수립 후에도 미군기에 의한 독도폭격사건이 일어났다. 독도가 미공군의 폭격연습장에서 제외될 때까지 어민들은 이처럼 정부의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학살’의 위험에 노출돼있었다. 독 ...
미 대사관, “한국정부, 독도 정치적 이용”
1948년 6월 8일에 26명의 사상자를 낸 독도폭격사건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의 일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책임은 사실상 미군정 아래에 있었다. 그러나 1952년 9월 15일의 독도 폭격 사건은 전쟁 중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존재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한국정부는 1952년 9월 20일 홍종인 독도탐사대장으로부터 폭격사건에 대한 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