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 사건을 비롯해 포항 예천 등에서 미군의 민간인 폭격에 대한 진상규명이 시도되는 가운데 울릉도에서도 1948년 독도 어민들에게 가해진 미공군 폭격사건의 진상규명 및 보상요구가 일고 있다. 독도찾기 대구·경북운동본부 및 독도지키기 울릉군민연대 등 사회단체들은 미 군정 당시인 1948년 6월8일 오전 독도에서 미역을 따다 미공군의 폭격으로 어민 150여명이 숨진 사건도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14일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 단체는 독도어민 폭격사건은 어민 150여명이 미공군의 폭격으로 대부분 숨지고 4명만이 살아 남은 비극으로,진상규명이 제대로 안돼 50여년간 유족들 가슴에 응어리져 있다고 밝혔다.이 사건은 폭격의 와중에서 살아남은 장학상씨(당시 36세·1996년 사망) 등 4명이 사건 직후 천신만고 끝에 울릉도로 돌아와 세상에 알려졌다. 장씨 등 생존자 2명은 1995년 독도폭격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던 한국외국어대 독도문제연구소와 푸른독도가꾸기모임 회원들에게 증언한 녹취록에서 “울릉도에서 날아온 12대의 폭격기가 2개조로 나눠 600m 상공에서 선회하며 융단폭격,조업현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으며 30여척의 동력선에 척당 5∼8명이 타고 있다가 150여명이 숨졌다”고 말했다. 당시 미 군정은 사건발생 8일이 지나도록 폭격사실 등을 부인하다 미공군 극동사령부를 통해 미 제5공군 소속 B29폭격기가 어선들을 바위로 오인해 연습폭격을 했다고 발표했을 뿐 제대로 진상을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독도찾기 대구·경북집행위원장 이예균 집행위원장은 “이 사건도 노근리 사건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진실을 규명해 피해어민 유족들에게 보상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울릉=김상조기자 2002.2.14.국민일보
이 뉴스클리핑은 http://dokdocenter.org/dokdo_news/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