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와 관련, 디지털 복사본을 들여오기로 프랑스와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조치는 원본 반환은 물론 ‘상호 교환’이나 ‘상호 대여’ 등의 기존방식에 비해 부적절한 것으로 정부의 반환협상 의지가 대폭 후퇴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예상된다.
정부는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와 관련, 디지털 복사본을 들여오기로 프랑스와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조치는 원본 반환은 물론 ‘상호 교환’이나 ‘상호 대여’ 등의 기존방식보다 후퇴한 것으로 정부의 반환협상 의지가 대폭 후퇴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예상된다.
정부 당국자는 4일 “프랑스의 원본 반환 불가입장 고수로 인해 반환협상이 쉽지가 않다”면서 “잠정조치로 디지털 복사본을 들여오는 것을 추진 중이며 내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반환 요청을 한 책자 가운데 프랑스에만 있는 유일본 30권은 연구 편의를 위해 들여올 필요가 있다”면서 “이는 잠정조치이며 반환협상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2년 국내 연구진의 현지 조사 결과 프랑스가 1866년 병인양요 때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는 총 297권으로 확인됐다. 이 중 원래 표지가 유지된 것은 11권뿐이며, 우리나라에 없는 유일본은 30권이었다.
그는 “프랑스 외무성은 우리의 제안에 긍정적이며 도서관측과 내부 협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지적재산권 문제와 디지털화에 따른 비용 문제가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는 앞서 지난 1993년 일본의 신칸센을 누르고 TGV가 한국의 고속철도 부설권을 따내는 과정에서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당시 방한했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과 ‘상호 교환방식’에 구두 합의했으며, 외규장각 도서 중 한 권을 한국에 제공하기도 했다.
이어 양국은 민간대표간 협상을 통해 2001년 7월 ‘프랑스의 외규장각 어람용 도서(임금이 보는 책)와 한국의 비(非)어람용 복본을 상호 대여하자’는 등가교환방식에 합의했다.
정부는 이후 수년간 합의 수용 여부를 논의했으나 약탈당한 문화재를 상호 대여 형식으로 돌려받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문화계의 반대로 2001년 합의를 완전 백지화했다.
이에 따라 2004년 하반기부터 정부가 직접 프랑스와 반환협상을 벌여왔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협상이 지연돼 왔다.
정부가 이번에 추진 중인 디지털 복사본 입수는 2001년 합의안에서 우리가 프랑스 소재 유일본을 받고 대신 프랑스에 없는 복사본을 주기로 한 것보다도 후퇴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비록 잠정조치라 하더라도 복사본을 들여올 경우 프랑스의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대한 협상 자세가 한층 더 강경해질 수 있다며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조운찬·박영환기자 yhpark@kyunghyang.com〉2005.7.5. 경향신문 佛 외규장각 ‘버팀수’ 에 韓 ‘자충수 프랑스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 유일본에 대해 우리 정부가 디지털 복사본을 요청한 사실은 정부 차원에서 재협상에 들어간 이후 처음 나온 조치다. 특히 외교 채널을 통한 공식 요청으로, 그렇지 않아도 ‘등가교환’ 원칙을 견지한 채 반환에 소극적인 프랑스에 오히려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반환협상 경과=한국과 프랑스간 반환교섭은 1990년대 들어 시작됐다. 지난 91년 서울대의 이태진·백충현 교수 등은 외규장각 도서반환을 요청하는 문건을 외교부에 제출했고, 정부는 다음해 7월 프랑스에 외규장각 도서반환을 공식요청했다.
이후 도서반환 문제는 양국간 외교현안이었다. 93년 프랑스는 고속철도 부설권을 따내기 위해 외규장각 도서반환 의사가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당시 방한한 미테랑 대통령은 ‘휘경원 원소도감 의궤’ 1권을 가져와 우리 정부에 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고속철도 부설권만 프랑스로 넘어갔을 뿐 나머지 의궤는 더이상 돌아오지 않았다.
외규장각 의궤 반환이 지지부진하자 양국은 99년 교섭을 민간의 전문가 논의 방식으로 바꿨다. 한국은 한상진 당시 정신문화연구원장을 협상대표로 임명했다.
2001년 7월 양국 대표는 “프랑스의 외규장각 어람용 도서(임금이 보는 책)와 한국의 비(非)어람용 복본(複本)을 상호 교류하자”고 합의했다. 그러나 이러한 ‘등가교환’ 방식은 소장기관과 학계의 반발을 불러왔고, 정부는 민간의 협상안을 백지화시키기에 이르렀다.
약탈당한 문화재를 교환형식으로 돌려받는다는 것이 국민 정서에 맞지 않고 학계의 반발도 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정부가 직접 협상에 나선 후 내놓은 첫 결과물이 유일본 30권에 대한 디지털 복사본 입수라는 잠정조치로 기존의 등가교환 방식보다도 물러선 것이다.
정부 당국자도 예전 협상안에 비해 오히려 한발 물러난 것 아니냐는 지적에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실토했다. 그러면서 “반환이라는 우리의 원칙은 확고하지만 프랑스의 원칙도 완강하고 협상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반환에 앞선 우회로라는 뜻을 피력했다. 그는 또 “일단 연구를 위한 잠정조치로 협상은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디지털 복사본 반입은 민간협상 당시에도 한때 제기됐지만 당시 학계 자문위원들 대부분이 “학술차원에서 복사본 반입이 다급한 것이 아니고 협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해 무산된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환협상 대상=반환 대상이 되고 있는 외규장각 도서는 프랑스가 1866년 병인양요때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약탈,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 중인 의궤 등 191종 297권이다. 이중 한국에 필사본이 없는 유일본은 30권이다. 외규장각 도서가 파리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1975년 당시 파리국립도서관 직원으로 일하던 박병선 박사가 조선시대의 고서목록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국내에 처음 알려졌다.
〈조운찬·박영환기자〉 2005.7.5.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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