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 2007-05-16

백악관 광인의 불장난

미국 정부가 명분 없는 이라크 침략을 준비하고 있는 현재, 역사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1백여년 전의 한 전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 전쟁의 전말을 들여다보면 현재의 미국 침략이 지구를 어떤 상황으로 끌고갈는지 유추할 수 있다.



현재의 미국이 이라크의 석유에 침을 흘리듯, 1백여년 전 패권국가였던 영국은 남아프리카 트랜스발(Transvaal)의 두 개의 ‘보어공화국’(Boer:네덜란드 계통 이주민)의 금광에 야욕을 가졌다. 현재 석유가 세계경제의 결정적 요소인 것처럼, 당시에는 금이 가장 값진 자원이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미국이 친유럽연합적 정책을 펴온 이라크를 멸망시킴으로써 유럽연합이라는 경쟁자에게 경고를 보내려고 하듯, 그때의 영국은 보어공화국들과 절친했던 경쟁자 독일을 상대로 `제국의 근육’을 과시하려고 했다. 현재의 미국이 이라크 침략의 명분으로 `인권’을 내세우는 것처럼, 당시의 영국은 새로운 이민자들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았던 보어공화국들의 배타성을 문제삼아 `인권수호’를 전쟁의 표어로 내걸었다.



1백여년 전 헤게모니가 절정에 달했음에도 신흥대국 독일과의 경쟁에서 곧 패배할 것을 우려했던 영국이 `한차례 전승’으로 자원도 얻고 권위도 높일 것을 도모했듯, 유럽과 신생거인 중국을 두려워하는 미국이 한차례 대살육을 통해 권위를 다시 확립하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이 기획하는 살육과 같은 꼴이었던 1백여년 전 영국의 `보어 정벌’은 과연 잘 끝났을까 영국의 권위가 향상되고 남아프리카에서 인권이 신장됐을까



미국이 전쟁을 “단기간에 끝내겠다”고 약속하듯이, 1899년에 전쟁을 개시한 영국도 “몇개월 안에 끝낼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전쟁은 실제로 3년이나 걸렸고, 영국 국민은 상상 밖으로 커다란 희생을 당했다. 침략자와의 전쟁을 “내집을 지키는 싸움”으로 여긴 보어들이 사력을 다해 투쟁한데다, 남아프리카 밀림과 계곡과 골짜기들이 게릴라전을 전개하기에 이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육군을 거의 총동원한 영국은 1년만에 보어공화국의 수도들을 점령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싸움’의 시작일 뿐이었다. 골짜기마다 계곡마다 보어 저격병이 침략자들을 기다리고 있던 남아프리카는 2만명 이상의 영국 군인의 공동묘지가 됐다. 보어들의 저항을 꺾기 위해 영국군은 초토화전략을 구사해 게릴라전 지역의 주민들을 남김없이 수용소로 보내기 시작했다. 약 2만5천명의 보어 양민들을 기아와 유행병으로 죽인 그 수용소들은 현대적 수용소의 기원이다. `인권신장’은 간 데 없이 사라졌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 결국 3년만에 보어공화국 점령에 성공한 영국의 위상은 높아지지 못했고, 영국의 침략성을 확인한 독일은 군비를 대폭 확장해 영국과의 `결전’ 준비에 들어갔다. 남아프리카에서 영국의 `근육 과시’는 유럽을 폐허로 만들 제1차세계대전의 서곡이 되고 말았다.



현재 미국은 1백여년 전 영국의 어리석은 폭력을 그대로 반복하려 한다. 확언하건대, 이라크 시민과 아랍의 반제무장저항운동(서방이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이들의 항쟁)은 보어의 사투 못지 않게 끈질길 것이다. 미국의 도전에 직면한 경쟁자(유럽연합, 러시아, 중국)들의 대응(대규모 군비확장과 장기적 대미대립 준비)은 1백여년 전의 독일 못지 않게 적극적일 것이다. 미국과 영국에서 권력을 잡은 전범들은 지금 인류를 새로운 제국주의적 대립과 대규모 살육으로 몰아가고 있다. 반전운동은 인류의 자멸을 원하지 않는 모든 지구인들의 공동과제다. 지금 우리 모두가 핵무기를 놓고 불장난치는 백악관 광인들의 인질이 되어버린 셈이다.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2003.3.14.한겨레신문


  기사입력시간 : 2007-05-16

이 뉴스클리핑은 http://dokdocenter.org/dokdo_news/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