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 2007-05-16

美·대영제국은 닮은꼴










“우리는 점령군이 아니라 해방자로 왔다”. 1917년 3월11일 스탠리 모드 장군이 영국군을 이끌고 바그다드에 입성하면서 한 말이다.



그로부터 86년이 지난 2003년 3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그의 지시를 받는 토미 프랭크스 중부군 사령관은 “자유 이라크”를 외치며 바그다드를 노려보고 있다. 역사는 반복하는 것인가. 미국은 몰락한 앵글로색슨 제국 영국의 궤적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영국은 17세기 이래 오스만 투르크의 식민지가 된 이라크를 1차대전 직후인 1920년부터 위임통치했다. 영국이 국왕으로 내세운 파이잘 1세는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함께 오스만 투르크와 맞서 싸운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라크인에게는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에 오스만 투르크에서 성장한 외국인에 불과했으며 충실한 대영제국 하수인이었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몰아낸 뒤 군정을 실시하려 한다. 이 또한 이라크인에게는 외세일 따름이다.



영국은 1932년 이라크를 국제연맹에 가입시키면서 독립을 선포했지만 이라크인들은 자국 영토에 영국군이 있는 한 식민지배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민족주의 성향의 총리가 왕족을 몰아냈을 때 영국은 군사적 개입을 통해 새로운 정권을 만들어냈다. 이라크인들은 압둘 카림 카심 장군이 왕족과 총리를 살해하고 공화국을 선포한 1958년 7월14일을 독립일로 기념하고 있다. 이후 바트당이 티그리스강의 주요 다리 중 2개를 ‘해방’과 ‘7월14일’로 명명한 것이 선전선동을 위한 것만으로 치부할 수 없게 만드는 역사적 배경이다.



미국은 1~2년간의 군정을 거친 뒤 이라크인에게 정권을 돌려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쿠데타를 통해서든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서든 이라크 민족주의 세력이 친미정권을 몰아내려 할 때 과연 미국은 대영제국과 달리 이를 허용할까. 이라크 전쟁 이후 시리아, 이란, 사우디 아라비아 등 아랍 전체를 소위 ‘자유화, 민주화’하겠다는 야망을 품은 미국은 이를 선뜻 수용하지 않을 것 같다.



특정 연도와 날짜까지 외우며 영국 역사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잭 스트로 외무장관은 지난해 11월 “이라크 문제는 영국 제국주의의 유산”이라고 말했다.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를 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경선 확정과 침공, 내정간섭 등으로 인해 현재까지 문제가 이어지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미국은 전임자의 충고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유프라테스강에 ‘재해방’과 특정일자를 명명한 2개의 다리가 서기 전에.



〈박성휴기자〉 2003.3.18.경향신문



  기사입력시간 : 2007-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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